기후 위기와 지방소멸.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영광군이 전례 없는 시도에 나서고 있다. 태양과 바람으로 만든 전기를 돈으로 바꾸고, 이를 주민에게 돌려주는 ‘햇빛·바람 기본소득’이 그것이다.
이 모델은 단순한 복지정책을 넘어, 신재생에너지로부터 발생한 공공 수익을 주민들과 나누는 구조다.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이 정책은, 에너지 전환과 지역 공동체 회복이라는 두 개의 시대적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일사량과 풍량을 자랑하는 영광군은 그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적극 유치해 왔다. 현재 지역 내에는 약 930개의 태양광 발전소와 8개의 풍력 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내년에는 해상풍력 설비 허가용량이 4,100MW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에너지 개발이익이 지역에 충분히 환원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세일 영광군수는 이에 대해 “햇빛과 바람은 특정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지역 주민 모두의 것”이라며, “그 수익 역시 지역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재생에너지로 지역 경제 살리기
영광군이 구상하는 ‘기본소득’ 모델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다. 하나는 주민이 발전사업에 직접 투자하고, 수익을 배당받는 구조다. 여기에는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해 주민의 참여를 촉진하는 전략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발전사업 수익의 일부를 별도 기금으로 조성해, 군민 전체에게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현금 혹은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군은 지난해 말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현재는 시행규칙 마련과 실행 계획 수립을 진행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소규모 시범 지급을 통해 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시험해볼 계획이다. 이익 공유 발전소 지정, 군민조합 설립, 공유재 기반 기금 조성 등이 그 실행 전략에 포함되어 있다.
영광군의 시도는 단지 에너지 수익 배분에 그치지 않는다. 이 실험은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다. 인구 감소, 산업 공동화, 지역경제 침체로 신음하는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하고 지역 순환경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지방소멸 위기 대응책으로 주목
영광군 백수읍 일대의 풍력 발전기 모습 사진=영광군 제공
기본소득은 전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석유 개발 수익을 바탕으로 전 주민에게 매년 약 1,000달러를 배당하는 '영구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충남 보령시 장고도 어촌계가 수산물 수익을 마을 주민에게 배분하고, 전남 신안군이 풍력 발전 이익을 주민과 공유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영광군은 지난 1월 ‘민생경제 회복 지원금’을 통해 이와 유사한 모델의 효과를 시험했다. 이 지원금은 전액 지역화폐로 지급되었고, 소비 촉진을 통해 443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208억 원의 부가가치, 188명의 고용 창출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소득 실험이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하려면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수익의 안정성, 기금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주민 간 형평성 문제 등이다. 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외부 기업과의 이해관계 조정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영광군 관계자는 “단발성 지원이 아닌,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원이 절실하다”며 “영광형 기본소득은 그러한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그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면, 또 다른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 영광군의 실험은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자원을 공동체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영광군의 시도는 한국 사회가 아직 답하지 못한 이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을 내고 있다.